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로사와 아키라 (문단 편집) === 관동 대지진 === 1923년 일본 관동 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집안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집은 무너져 내렸고, 혼란 중에 그가 살던 마을에도 조선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는 루머가 돌아 집집마다 보초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구로사와의 형은 비웃음을 보내며 보초에 나가지 않으려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죽도를 들고 보초로서 나갔는데, 엉뚱하게도 고양이 한 마리나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하수관에 조선인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이유로 보초로 배치되었다. 하루는 어른들이 마을 우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우물에 조선인들이 독을 탔다며 그 증거로 흰색 분필로 쓴 수상한 기호를 지목했는데, 그것은 당시 13살이던 구로사와가 이전에 아무 의미 없이 끄적거린 낙서였다고 한다. [[https://www.excite.co.jp/news/article/Litera_3425/|관련 기사]] 조선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결성된 자경단은 수염을 기른 사람[* 당시 조선인들은 대부분 면도를 하지 않았다.]을 무조건 조선인으로 지목하고 뒤쫓았는데, 구로사와의 아버지도 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일가족이 미친 자경단에게 포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로사와의 형은 무리를 비웃고 있었고, 어린 아키라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들을 에워싼 무리를 향해 '바보 자식들!' 이라고 호통치자 어리둥절한 자경단은 하나둘씩 사라졌다고 한다. 이 유년 시절 기억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 "어른들의 행동이 이러하거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